아! 아프리카, 그 푸른대륙에서의 100일 **6 이집트 - 아스완과 아부심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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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스완 Aswan

아침, 룩소르를 거쳐 아스완으로 가는 기차는 비교적 여유로웠다. 에어컨은 우리가 기차에 오르자마자 꺼진 듯 했다. 창밖으로 나일강이 흐르고 있었고, 나는 거슬러 오르고 있었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같은 느낌일 것만 같았다.

멀지 않은 거리이지만, 상업적으로도 활기차던 룩소르보다 아스완은 좀 더 차분하게 안정된 느낌이었다. 어쩌면 그 이유가 누비안들 때문일 수도 있겠다하고 보니, 사람들이 조금은 다르게 보이기도 했다.

누비안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아스완에서 수단의 수도 카르툼(khartoum) 사이에 나일강을 따라 거주하며 농업과 어업, 배를 이용한 운송업을 주업으로 삼고 있던 민족이었다, 매년 반복되는 홍수와 수력발전을 위한 구실로 하이댐(High Dam)이 건설되기 전까지는. 이제 그들의 삶은 발전이라는 명분하에 관광객 뒤치다꺼리나 하게 되었으니, 대의를 내세워 수몰된 사람들의 터전은 어디에서 돌려받을 수 있을까?



고대의 문화적 유물들 속에서, 당연하겠지만, 451명의 목숨을 앗아가며 건설된 하이댐은 전혀 인상적이지 못했다. 물론, 그렇다고 그냥 지나칠 수도 없었다.



* 필레 신전 (Temple of Philae)



그보다는 하이댐의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서, 유네스코의 지원으로 지금의 아길리카(Agilika) 섬으로 옮겨진 필레 신전이 훨씬 인상적이었다.

대부분의 신전들과 같이 프톨레마이오스(Ptolemies) 왕조 (기원전 3-4세기 경) 때 세워진 이 신전은 지하와 죽은자들의 신인 오시리스(Osiris)의 아내이자, 태양의 신 호루스(Horus)의 어머니인 이시스(Isis)를 위해 지어진 것이다.



이집트 신화에 따르면, 오시리스와 이시스는 서로 남매이자 부부였다. 그런데 훌륭하게 나라를 다스리던 오시리스를 그의 동생 세트(Set)가 시기하여, 그를 속여 관에 가두고 나일강에 떠내려 보내니, 이시스는 슬퍼하며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강을 따라 남편의 관을 찾아갔다고 한다. 지중해를 지나 레바논까지 흘러들어가 버드나무의 가지와 함께 어느 왕궁의 기둥이 되어있는 관을 발견한 이시스는 시신을 수습하여, 이집트로 다시 가져오게 되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된 세트가 다시 숨겨져 있던 형의 시신을 찾아내어 갈기갈기 찢어 여기저기에 묻어버리고 만다. 여신 이시스는 다시 슬픔에 잠겨 갈대로 만든 배를 타고 늪지대를 헤매며 남편의 시신을 한 부분만 빼고 모두 찾게 되는데, 그 중 심장을 찾은 곳이 원래 이 신전이 위치하던 필레 섬(Philae Island)라고 한다. 후에 그의 아들 호루스가 오시리스의 혼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아 삼촌인 세트에게 복수를 하고 진정한 오시리스의 후계자로 인정을 받게 된다.




이집트 기독교인 콥트교 신자들이 교회로 사용하기도 했던 흔적들




멀어지는 섬을 뒤로, 로마 양식의 건축물인 트라야누스(로마의 황제) 신전이 보인다.



* 아부심벨 (Abu Simbel)



아부심벨로 가기 위해서는 새벽 3시에 일어나, 4시에 출발하는 버스에 올라야 한다. 테러에 대비한 무장경찰들의 호위를 받으며 모든 버스가 함께 움직인다.

아스완에서도 남쪽으로 4시간을 더 내려가면서 만난 새벽의 사막은 또 다른 느낌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잠든 사람들과 좁은 미니버스의 의자에 기대어, 동이 트는 아침을 만난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여정의 끝, 아부심벨은 나일강 서안에 위치하고 있었다.


신전 앞을 지키고 있는 람세스 상 중 하나에서 떨어진 머리의 위치까지 똑같이 이동되어졌다.


입구에 있는 상들은 모두 람세스 2세로, 20m가 넘는다.


람세스 2세가 라하라크티(Ra-Harakhty), 아문(Amun), 프타하(Ptah) 그리고 본인, 파라오 람세스 2세에게 바치기 위하여 건립한 신전은 자신을 위한 대신전과 자신이 누구보다 사랑했던 여왕 네페르타티를 위한 소신전으로 이루어져있다.

신전은 1813년 스위스의 탐험가 Jean-Louis Burkhardt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그 당시에는 모래위로 신전 앞, 단 하나의 상의 머리 꼭대기만이 모래 속에서 살짝 드러나 있었다고 한다.


네페르타티를 위한 소신전

람세스 2세가 자신의 힘과 영욕, 남쪽의 부족들을 향한 경고를 위해 설립한 신전 (벽화에는 그래서인지, 노예들을 다루는 이집트인들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다). 그저 보기만 해도 아, 하는 탄성이 나오는 그 규모와 정밀하게 조각된 벽화들. 몰려온 관광객들에 떠밀려 들어간 내부까지. 과연 인간의 능력은 어디까지인지 궁금하게 하는 것들과.



람세스 2세의 대신전, 2월과 10월 20일경 내부의 4개의 신상 중 죽음의 신 프타하를 제외한 3개의 신상이 아침 해에 빛난다는 이야기는 정말일까? 모두 알다시피 유네스코가 이 유적의 보존을 위해 1963-66년에 걸쳐 약 400억을 들여 약 70미터를 옮겼다는 것도 믿기 힘든 사실이지만 그 이후에 그 날짜가 하루 늦춰졌다는 이야기도 진실일까?

모락모락 피어나는 질문들을 다 챙길 틈도 없이 나는 관광객의 무리에 휩쓸려 다시 버스에 올라야 했다. 돌아오는 길에 미완성 오벨리스크를 스치듯 지나치었다, 옷깃 스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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