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배낭여행, 이집트에서 남아공까지 *12 에리트레아 - 아스마라로
  ripi

늦은 저녁의 카이로 시내는 비교적 한산하고 여유로웠다. 라마단이 끝나서일까. 빈 택시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어렵지 않게, 적정수준에서 흥정하여 카이로 국제공항까지 갈 수 있었다. 이집트에 도착한 후 처음 맞이했던 아침처럼 대기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공항은 신식으로 깨끗하고 단아했다. 내일 런던으로 돌아가는 토니와 인사를 하며, 이제부터는 혼자라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마치 지금이 여행의 진정한 시작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홀로 갈 길이 외롭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자정이 넘어서야 떠나는 비행기를 위해, 티켓을 받아 수속을 하고 소지품 검사대를 차례차례 통과했다. 시간이 매우 느리게 흐르는 것만 같았다. 공항 벤치에 앉아  Art Garfunkel의 ‘Traveling boy’를 듣는다.


Wake up, my love, beneath the midday sun, alone, once more alone. ......Take my place out on the road again, I must do what I must do.


노래를 듣다 적적함에 가이드북이나 읽으려고 뒤적거리는데, 없다. 가이드북이 없다. 갑자기 숙소 침대위에 놓여있던 ‘론니 플래닛’의 주홍빛 모습이 그려진다. 순간 머리칼이 쭈뼛 서고 목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아, 젠장 $%#@$%. 정말 놓고 온 것일까. 가방을 다시 뒤져도, 또 뒤져도 없다. 이럴 때, 정말 눈앞이 깜깜해진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것일까. 다시 숙소에 다녀오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고 호텔로 전화를 걸어보았으나 토니는 돌아오지 않았고. 인터넷 카페라도 간 모양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다녀야할지 막막하다. 정말 막막하다. 단 십여 분만에 열배쯤 우울해져 버리고 말았다.



*** 에리트레아 Eritrea

홍해를 길게 끼고, 아프리카의 한 귀퉁이에 조용히 누워있는 나라. 내 여행 계획을 듣던 친구들은 에리트레아라는 이름에 고개를 갸우뚱 하기도 했었다. 그런 나라가 있었냐는 듯 한 표정. 하긴 나도 수단으로의 길이 막혀 다른 경로를 찾다가 처음 들어본 나라였으니, 친구들의 표정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1993 년에 에티오피아로부터 독립하여 정부를 세웠으니, 이제 막 10살이 넘어가기 시작한 에리트레아. 말 그대로 신생국가. 하지만 역사가 없고 뿌리가 없었다면, 그 길고 긴 전쟁의 시간을 거쳐 독립을 이루어내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문득 나는 과연 무엇이 이 사람들을 이 길로 이끈 것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그 것은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의 독립운동 역사와도 연결이 된다.

사람들은 어떨까.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있을까? 사람들이 만나고 싶어진다. 그래,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 독립의 역사

고대 악숨제국(현 에티오피아의 북부지역)의 일부였던 에리트레아는 950년 무렵부터 에티오피아와 동등한 위치의 연합을 이루어 왕국을 지켜온 국가였다.

그러나 16세기 오스만 제국의 지배 아래 들어간 이래로, 19세기까지는 이집트의 간섭을 받았고 19세기 말에는 결국 이탈리아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만다. 1896년 에티오피아가 아두와 전투에서 이탈리아를 격파함으로서 이를 저지하는 듯 했지만, 1936년 다시 이탈리아가 세계 제 2차 대전의 분위기에 편승하여 에티오피아를 병합함으로서 에리트레아는 이탈리아의 아프리카를 향한 식민지 야욕의 전초기지가 되었다.

전쟁 후에는 잠시 당시 승전국이었던 영국의 지배아래 있기도 하였으나, 1952년 정부는 다시 에티오피아와 연방을 결성하였다. 그러나 1962년 에티오피아 왕국정부는 에리트레아를 자치지역에서 일반주로 격하하고 그 지역을 에티오피아의 일부로 편입시키게 된다. 이에 분노한 에리트레아 국민들은 ELF(에리트레아 해방전선)를 결성,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한다.

에티오피아 정부의 강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강경하게 저항하던 ELF는 결국 1991년 EPRDF(에티오피아 인민혁명민주전선)와 함께 멩기스투 정권을 무너뜨리고 아스마라를 수도로 한 임시정부 수립을 선언하였다. 1993년 주민투표를 통해 99.8%의 독립지지를 얻은 에리트레아 정부는 이로써 53번째 아프리카의 독립국가가 되었다.

약 30년간의 독립투쟁에서 병사 16만 명, 시민 4만 명이 사망하였고 약 75만 명의 난민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1998년에 또 다시 에티오피아와의 국경분쟁으로 수만 명이 사망하였으나 2000년 분쟁을 종식하는 평화협정에 서명하였고 현재는 양국 국경에 UN평화유지군이 주둔하고 있는 상태이다.


** 아스마라(Asmara)로 가는 길 : 길지 않던 첫 동행

칠칠치 못함. 당황하여 그렇게 난리를 치고 자리에 다시 앉으니 옆에 한 중년의 여성이 일기를 적고 있다. 여전히 붉게 상기된 내 얼굴을 힐끗 보고는 혼잣말을 하듯 그녀가 중얼거린다. “세상에 참 쉬운 일은 없지. 쉬운 일은 없어. 안 그래?” 나는 영 기분이 아니었으나, 애써 미소 지으며, “그런 것 같아요.” 라고 대답해주었다.

그녀의 이름은 아만다, 60줄에 들어선 네덜란드인. 얼굴에 깊게 파인 주름이 이제까지 그녀의 삶과 여정을 말해주는 듯하다. 아니나 다를까, 직업이 항해사였단다. 여성 항해사라. 내게는 쉽게 연상되지 않는 두 단어의 조합.

“20년간 배를 탔지만, 아직도 가보지 못한 곳이 더 많아. 근데 나이가 드니, 새로운 곳보다는 전에 가봤던 곳들 중에 아름다운 기억이 남아있는 곳에 다시 가게 되네. 에리트레아는 내게 그런 곳이야.”

내 것 만한 배낭을 메고 또 그에 반절만한 가방을 하나 더 든 모양새가 마치 나이는 그저 숫자일 뿐이라고 시위하는 듯하다. 수족을 잃은 것처럼 좌절하는 내게 그녀는 도착하면, 그녀의 가이드북을 복사하라며 위로를 해준다. 그렇게 비행기는 이륙했다. 한 달 동안 조사한 자료와 가이드북을 뒤에 남기고, 난 어둠속에 묻힌 모래사막 위로 무엇을 할지도 모르는 채, 아프리카를 향해 나아갔다.





이른 새벽의 아스마라 국제공항은 생각보다도 더 작고 초라해 보였다. 많이 벗겨진 하얀 도색들이 조금 을씨년스럽기도 했다. 이집트에서는 관광객이 많아 잘 몰랐는데, 에리트레아인들 뿐인 공항에서부터 우리는 상당히 눈에 띄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거기까지였다. 아만다가 비자 문제로 입국을 거절당한 것이다. 전에 에리트레아를 찾았을 때는 배로 온 것이라 비자를 항구에서 받을 수 있었는데, 그 때 기억으로 이번에도 공항에서 비자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러나 공항직원들은 아주 매몰차게 그녀를 불법입국자 취급했고, 상황은 알겠지만 다음 비행기로 카이로로 돌아가라는 말만을 되풀이했다. 침착해보이던 그녀도 얼굴이 붉어지며 부탁을 해보기도 하고, 화를 내보기도 했지만, 전혀 먹힐 기미가 보이지 않자 자포자기 한듯 다시 가방을 들었다. 어떻게 미안하다는 말도 전하기 쑥스럽고 겸연쩍었다.

“ 세상에 쉬운 일은 정말 없는 것 같아요, 아만다.” 나는 애써 웃으며 말을 건넸다. “좋은 기억을 갖고 왔는데, 이렇게 거절당하다니. 어쩔 수 없이 돌아가서 다시 비자를 받아서 와야겠네.” 그래도 끝내 다시 오려나보다. 가이드북을 팔라고 말할 참이었는데... 결국 잠시 빌려 숙소정보만을 옮겨 적고 책을 돌려주었다. “난 일주일정도 머물 예정이에요. Pensione Stella에서 지낼 거니까 다시 오면 꼭 봐요.” 그러나 그 후로 난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

공항에서 약간의 환전을 하고 나서는데, 새벽공기가 찼다. 어슴푸레 빛이 드는 세상은 잿빛이 묻어나는 하늘색이었다. 옹기종기 앉아있는 사람들이 자꾸 나를 쳐다본다. 심호흡을 깊이 해본다. 흐읍- 휴우. 아스마라다.




유키 곧 아프리카로 떠날예정인 사람이예요..^^ 뒤적뒤적하다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여정이 잘 묻어있는 글, 잘 읽고 갑니다.또 올께요. 근데 수단으로의 육로입국은 불가능하셨던건가요? ... 2009/07/05   
ripi 육로입국이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스완에서 남쪽으로 나일강을 따라 배를 타고 입국이 가능한 것으로 들었어요. 그 외에는 에티오피아 쪽에서의 입국도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정세에 따라 변동이 있으니 현지에서 문의하시는 것이 가장 빠를 수도 있습니다.

여전히 부럽습니다. 저도 방금 케냐에서 돌아왔는데 ^^ 즐거운 시간과 경험 되실 것을 믿습니다!
2009/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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