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배낭여행, 이집트에서 남아공까지 *13 에리트레아 - 아스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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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하고 후덥지근하던 카이로의 날씨와 달리, 마치 풍경의 채도가 걷힌 듯 아스마라의 대기는 차고 시렸다. 오전 5시, 가이드북도 없이 나는 버스를 기다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마치 엄마의 손을 놓쳐버린 아이같이. 주변 사람들의 표정도 건조했다. 마치, 버스는 언제 올지 모른다며 나를 꼬드기는 택시기사가 서둘러 저 이방인을 데려가줬으면 하는 표정이다. 흐읍. 3초.

결국 300낙파(Nfa)를 주고 택시를 탔다. 15Nfa가 $1이니 $20나 준 셈. 억울하고 속이 쓰리지만 이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되도록 빨리.



동이 막 트고 있는 새벽의 아스마라 시내



** 아스마라 Asmara


예상대로 시내는 공항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나는 날씨가 너무 서늘하다느니, 숙소가 문도 열지 않은 것 같다느니 하며 기사에게 괜한 짜증을 부려보았지만 택시기사는 그저 말없이 짐을 내려주었다. 흐음. 대꾸가 없으니 싸움도 되지 않는다.

Pensione Stella. 새벽의 숙소는 고요했다. 어두운 복도에 짐을 내리고 앙상한 벤치위에 앉으니, 숨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조용하니 또 잊고 온 것이 생각난다. 다 있고 그냥 가이드북 하나 없는 건데, 마음이 이렇게 무겁다니. 나도 참.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누군가 나를 흔든다. 깜박 졸았던 모양이다. 앞에는 부스스한 얼굴의 아저씨가 ‘이건 뭔가’ 하는 표정으로 서있다. 내가 어떻게 들어왔는지 궁금해 하는 표정이다. ‘문은 열려있었어요, 다행스럽게도.’ 나도 모르게 문장의 뒤를 강조 했는데, 아저씨는 별 반응이 없다. 일단 새벽이고 하니 들어가서 눈 좀 붙이라는 건지 말없이 키를 가져와 나를 방으로 안내한다. 회칠된 방은 단출하지만 깨끗했다. 낡아 보이지만 널찍한 침대와 칠 벗겨진 장롱 그리고 작은 목조책상.

짐도 풀지 않은 채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버렸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이봐, 여기는 에리트레아야. 먼 곳, 정말 아주 먼 곳에 뚝 떨어진 거라고. 앞으로 이렇게 3달을 버텨야 돼. 누구도 널 도와줄 수 없어. 넌 혼자야. 진짜 혼자라고.’

이렇게 중얼거리고 나니, 갑자기 눈물이 핑 돈다. 물론, 이제라도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고 싶지는 않다. 자존심이 용납지도 않고. 주변의 걱정과 염려, 반대를 무릅쓰고 시작한 여행이 아닌가. 이대로 돌아가면 면목이 없다. 이제 겨우 시작했는걸. 어쩌면 이번 여정은, 내 인생에 다시는 오지 않을, 두 번은 없을 그런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 이대로 포기한다면 훗날 크게 후회할 것만 같다. 분명 그럴 것 같다.



이른 새벽, 길을 청소하는 아낙네들



** Harnet Avenue


아침 공기가 상쾌하다. 아, 아직 새벽인가. 큰 길로 나서니 막 동이 트기 시작한 아스마라 시내를 단정한 푸른 옷을 걸친 아낙네들이 싸리비로 쓸고 있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먼지가 폴폴거리며 오르는 모습이 생기롭게 느껴진다. 조용한 시내가 우리나라 충청도 어디쯤의 중소도시와 같은 모습이다. 붉은 스웨터를 걸친 학생들도 옹기종기 무리를 지어 등교를 하고 있고. 문득, 십여 년 전 나라의 독립소식을 듣고 거리로 뛰쳐나왔을 국민들의 모습과 바쁘게 잰걸음으로 출근을 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함께 겹쳐진다.



주욱 늘어선 기아차 리오

우리나라에서 안 팔리던 기아 리오를 모두 덤핑으로 넘긴 걸까. 택시가 모두 노란색 리오다. 예전에 TV에서 릭윤이라는 한국계 미국배우가 등장하던 광고가 생각이 난다. 반면에 버스는 모두 대우다. 택시와 달리 차가 많이 낡은 것이 70년대에 우리나라 시내를 활보했던 ‘오라이’ 누나들의 버스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지 여전히 승객을 꽉 채우고 뒤꽁무니로 퉁퉁 매연을 뿜으면 달리는 모습이 참 정이 간다.



주도로(Harnet Avenue), 문방구도 참 많다

주도로(Harnet Avenue)의 양쪽 길가에는 이 나라에도 컴퓨터 붐이 불고 있는지 적지 않은 컴퓨터 상점들과 인터넷 카페가 늘어서있다. 그러나 서늘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길에서 쓰러져 잠든 사람들의 모습은 이집트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사람들의 표정은 훨씬 온화하고 친절한 것이 아직은 관광객들로 붐비지 않은 덕택인 것만 같다.



아프리카 스타일 진한 에스프레소와 빵 한 조각

이제 조금씩 즐기게 된 아프리카 스타일 커피. 진한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듬뿍 넣어준다. 그리고 빵 한 조각. 차도 한 잔 추가해서 먹었는데 $1도 채 안 된다. 숙박비는 80낙파(약$5) 정도였는데.



주도로의 명물, Cinema Impero. 이탈리아 파시즘 시대의 건물로 여전히 상영중



** 지부티(Djibouti) 대사관


오후에는 비자를 위해 지부티(Djibouti) 대사관을 찾아갔다. 가이드북이 있었다면 좀 더 쉽게 찾았을 텐데, 시내 남쪽 구석 막다른 골목에 자리 잡은 건물을 물어물어 찾기란 영 쉽지 않았다. 런던에서부터 프랑스 대사관에서 처리를 안 해줘 애를 먹이더니, 마지막 가파른 오르막길까지. 휴우, 오르고 나니 땀범벅이다.



잘 정돈된 지부티 대사관 내부 정원

마침 점심시간이라 잠시 자리를 비운 대사님을 기다리며 관내를 둘러보니, 아담하게 잘 정돈되어있는 모습이 함초롬하다. 볕은 강하지만 날씨는 마치 우리나라의 가을같이 서늘하여 땀은 금세 마른 듯 하고. 벤치에 잠시 앉아있으니, 젊은 나이의 여직원이 나를 부른다.

작은 키의 정 많게 생긴 대사님은 내가 왜 지부티로 여행을 가는지 궁금한 모양이다. ‘내게는 지금 아프리카의 모든 것이 새롭습니다. 길에서 만나는 것마다 신기해요.’ 라고 대답을 하니, 작지만 볼 것 많은 곳이라며 지부티 자랑이 한껏 늘어진다. 한 시간 정도 차 대접을 받으며 대사님과 이야기를 하고나니 쾅! 여권에 비자를 바로 찍어주시며, 자기 친구인데 가이드를 부탁해보라고 편지도 한 통 써주신다. 대사관에서 이렇게 차 대접에, 비자까지 바로 받아본 적이 있었던가? 흐음, 오늘의 고생이 다 잊히는 것 같다. 내려오는 길에 대사님이 추천해 준 Blue Nile Restaurant(Semaetat Ave)에서 늦은 점심도 챙겨먹고.



지부티 대사님이 써주신 편지와 지갑, 그리고 그녀 전혜린

대사관은 그 나라의 얼굴이다. 비자를 받으며 만난 첫인상은 여행 (혹은 그냥 방문일지라도) 내내 함께한다. 우리나라 대사관은 외국인들에게 어떤 인상일까, 문득 궁금하다. 친절하고 따듯하여 이 나라로 여행가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게 할까, 아니면 여행의 시작 전부터 완전 짜증이 나게 할까.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만났던 재외 대사관들에 대한 수많은 불평, 불만들을 생각해보면 그다지 기대가 되지는 않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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