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배낭여행, 이집트에서 남아공까지 *14 에리트레아 - 아스마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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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그러나 거친 물소리가 나를 깨운다. 과연 어떤 의성어가 이 소리를 표현할 수 있을까. 한참을 고민했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난 손빨래 소리, 씻김의 소리 등 들려오는 자잘한 소음들을 침대에 누워 한껏 상상한다. 검게 마른 팔목, 중년의 아낙, 서너 개의 세숫대야. 그러나 대부분의 상상은 어느 정도 예상을 벗어났을 때, 조금 더 강렬하게 기억에 남으니……. 빗살창을 천천히 밀자, 아, 히잡. 햇살보다 더 흰, 순백의 히잡을 걸친 아낙. 그녀가 빨래를 하고 있었다.



백색의 히잡을 두르고 빨래를 하던 아낙네


간단히 요기를 하고 시내에 위치한 여행자 안내소로 걸음을 옮기니 많은 여행자들이 불평을 하고 있었다. 가만히 들으니 지부티(Djibouti)로 가는 육로가 도적들의 빈번한 출몰로 인해 더 이상 외국인들에게 개방되지 않는다고 한다. 맙소사. 이건 마싸와(Massawa)와 아쌉(Assab)을 거쳐 지부티로 들어가려던 내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앞으로의 개방 재개도 미정이라고 하고. 이렇게 되면 사실상 난 에리트레아에서 육로로는 어떤 나라로도 갈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수단은 비자 없이는 갈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내전으로 위험하기까지 하고 에티오피아와의 국경은 분쟁이후로 닫혀있으니, 결국 다시 항공편뿐 인건가.



에리트레아 지도


비행기 편의 예약을 위해 찾은 에리트레안 항공은 이미 많은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흐음. 대충 눈치를 봐서 자리에 앉기는 했는데 줄이 전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직원이라고는 딸랑 2명. 그나마 한 명은 전화기를 붙잡고 누군가와 한 시간째 대화를 하는 중이고 남은 한 명은 한 고객과 지금 거의 30분 넘게 수다를 떨고 있다. 티켓을 사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고. 그러나 정작 당황스러운 것은 아무도 불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두 기다리는 일에 매우 익숙해진 사람들처럼, 참 편해 보인다.

내 인내심도 조금씩 바닥을 드러내던 찰나, 결국 옆에 앉아있던 한 중년의 백인 남성이 도대체 내 차례는 언제 오는 것이냐고 불평을 한다. 그러나 직원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다 순서가 있는 것이니 앉아서 기다리라고 엄하게 꾸짖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그는 이내 울상이 되어 붉어진 얼굴로 벌써 여기서 4시간째 기다리는 중이라고 나를 쳐다보며 하소연을 한다. 나도 애써 표정을 만들며, ‘안 그래도 아프리카에서 느리게 사는 법을 배우고 있어요.’ 라고 인사는 했지만, 오늘 안에 어떻게 직원과 말이라도 나눌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진 않았다.



아프리카에서 우리는 기다리는 일에 익숙해지는 법을 배운다


그는 마다가스카르에서부터 항해를 하고 온 프랑스인 끌로드. 홍해에서 풍랑을 만나 더 올라가지 못하고 마싸와에 배를 정박한 채 동생이 있는 두바이로 가기위해 케냐의 나이로비로 가는 비행기 편을 알아보려는 참이다. 3년 전에 아내를 잃었다는 그는 자식 셋을 모두 출가시키고 허전함을 견디지 못해 여행을 시작했다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가지고 나를 상대로 무료함을 달래려는 모양이다. 에리트레아 여자들은 특별한 것 같다느니, 오늘밤은 특별하게 보낼 것이라느니 등.

아무튼 나는 예상치 못한 거금이 비행기 삯으로 나가게 되는 것이 계속 아까울 따름이었다. 거기다 지부티에서 다른 나라로 나가는 표가 없는 이상, 왕복표를 사야 된다는 억지 규정까지 들먹이며 $300을 내라고 하니 나로서는 완전히 기가 찰 노릇. 육로로 에티오피아로 이동할 것이라고 해도 도대체 들어먹지를 않으니. 에휴.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다음에 발생하고 말았다. 예상치 않았던 비용에 현금인출기도 없는 이곳에서 난 거금의 수수료 7%를 들여가며 돈을 찾아야 했는데, 항공사 직원은 분명 내게 계산을 낙파로 해야 한다고 했건만! 낙파 뭉텅이를 들고 가니 그 직원은 온데간데없고 다른 직원이 오직 달러로만 지불이 가능하다고 하는 것이다. 헉. 이건 또 뭔가. 아프리카에서 자국의 화폐로 돈을 받는 항공사를 봤냐면서 오히려 나한테 역정을 내는 직원이라니!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왠지 불길한 예감이 엄습하는 것이 아니나 다를까, 역시 환전소는 낙파를 달러로 다시 재환전해 주지 않았다. Himbol Exchange. 정책상 안 된다며 완전 오리발이다. 사정도 하고 성도 내보지만, 안하무인이다. What the fuck! 정 쓸 곳이 마땅치 않으면 너희 나라로 돌아가서 바꿔보던가, 길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란다. 으아아악!!!



주도로(Harnet Ave)에서도 중심이 되는 1922년에 건축된 카톨릭 대성당(Catholic Cathedral)


어제 잠시 찾았던 여행사를 찾아보았지만 별 효용이 없고 결국 난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우체국 뒷골목 근처에 있는 달러 암시장을 찾았다. 여러 사람을 거쳐 만난 테드로스라는 사내는 나를 달러 암거래를 하는 사무실로 데려다 주었고 나는 그에 대해 약간의 사례를 해주었다. 에티오피아로부터의 독립전쟁에 참여했던 그는 몸에 지닌 여러 흉터들을 보여주며 전쟁으로 기인한 피폐상과 포장된 평화 속에 가려진 에리트레아인들의 비애에 관해서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993년 독립을 이루고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기뻐하던 순간부터, 어느새 독립운동의 영웅에서 독재자로 변해간 지도자 아페웨르키(Isaias Afewerki) 정권아래 침묵을 강요당하는 지금까지.



몸에 생긴 전쟁의 흔적들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하는 테드로스


여차하면 그냥 최고급 호텔에 가서 다 써버릴까도 했던 수많은 낙파 다발을 다행히 (당연히 좋지 않은 환율에 손해는 보았지만) 달러로 다시 환전하고 비행기 티켓도 구매했지만, 마음이 그렇게 편하지만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 사이에 또 바뀐 직원덕택에 편도티켓($240)을 구매할 수 있었다는 것 정도.



우체국 뒷편의 암시장을 찾아 헤메다 발견한 버스터미널, 그리고 라임을 팔던 소녀


지금 생각해보면, 에리트레아라는 나라에서 어떻게 내가 암시장을 찾을 생각을 했을까, 그 때는 참 겁도 없었구나 싶다. 요즘 직장에서 아프리카의 뿔 지역에 관한 업무를 하며 만나는 에리트레아에 관한 기사들과 소식들은, 이 나라가 서방세계에서 (단지, 핵이 없을 뿐) 거의 북한과 같은 수준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니 말이다. 아무리 외국인이이라 한들 여행자가 북한에서 암시장을 찾는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용기백배의 분쟁지역 전문기자도 아니고 말이다.



보여지는 것으로부터 멀어져, 그 내면을 바라보는 일은 쉽지 않다 (저녁 식사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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