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배낭여행, 이집트에서 남아공까지 *16 에리트레아 - 마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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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릉지와 평원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조심해야 한다. 아니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더위가 몰려오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지상에 다다르자 차창너머로 열기가 조금씩 스며들어온다. 우기가 오고 있기는 하지만, 폭염은 여전한 듯하다.

버스에서 이야기를 나눴던 친구 중 한 명이 숙소가 모여 있는 곳을 알려준단다. 어차피 가이드북도 없었던 터라, 호의를 기껍게 받아들였다. 이집트에서 이런 친절은 대게 다른 의도가 있게 마련이었는데, 그는 짐까지 들어주고는 몇몇 낡은 게스트하우스가 모여 있는 조그만 사거리에서 쿨하게 돌아선다. 저녁이라도 같이 먹자고 권해보지만, 자신도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것이라 가족과 보내야한다며 정중히 사양하고 가는 그의 마음이 미쁘다.

마싸와는 본토(Mainland)와 타울루드섬(Taulud Island), 마싸와섬(Massawa Island)로 이루어져 있는데, 나의 숙소는 그 중 타울루드섬 북동쪽에 마싸와섬을 마주보고 위치해 있었다.



열심히 만들어 본 마싸와 지도

정말 덥기는 덥다. 한 40℃쯤 되려나. 굉장히 습하기도 하고……. 결국 210낙파($14)를 주고 에어컨이 있는 방을 잡기로 했다. 이미 생각보다 지출이 많아져서 어지간하면 버텨볼까 했지만, 그늘 밑에 가만히 있어도 땀이 비 오듯 흐르는 폭염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방을 받자마자 일단 짐을 던져두고 숙소를 나섰다. 늦은 오후라, 더위가 곧 조금은 식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함께.



타울루드 섬과 마싸와 섬을 이어주는 다리 위의 철로, 그리고 멀리 파괴된 이슬람 성전



타울루드 섬과 마싸와 섬을 이어주는 다리 위의 철로, 그리고 멀리 파괴된 이슬람 성전

고대 악숨제국의 유명한 중계무역항으로 고대 로마와 이집트를 인도와 연결시켜 주던 아둘리스(Adulis)의 바로 위쪽에 위치한 마싸와는 원래 염전과 진주 채취로 유명했다. 그러나 1930년대 파시즘(Fascism) 정권의 이탈리아가 아프리카를 향한 식민지 야욕의 전초기지로 에리트레아를 병합한 이후, 이 도시는 동아프리카에서 가장 번화한 항구로 변모하게 된다. 하지만 1990년, 독립전쟁에서 유일한 항구를 에리트레아에 빼앗긴 에티오피아가 그에 대한 앙갚음으로 도시 전체에 융단폭격을 감행함에 따라, 한때 그 번영을 자랑하던 마싸와에는 전후의 폐허만이 남게 된다. 천천히 도시 재건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침체된 국가경제와 빈곤 등의 여러 가지 이유로 한때 고고학과 건축학의 보고였던 마싸와의 부흥은 여전히 요원하기만한 실정이다.



마싸와 섬에서 바라본 타울루드섬과 다리



마싸와 섬 입구의 버스정류장

날씨는 또 어쩜 이리 우라지게 좋은가. 땡볕을 피할 곳도 없이, 난 마싸와섬으로 이어지는 다리를 건넜다. 아랍 양식의 건축물들과 전쟁의 흔적이 아직 곳곳에 남아있는 입구를 지나 시내로 들어서니 모스크도 보이고 상점도 보인다. 그러나 멀리 해안도로에 히잡을 두른 여성 한 명이 빠르게 사라졌을 뿐, 인적이 드문 거리다. 타는 목을 축이려 가까운 상점에 들어서니, 주인장은 오수를 즐기던 모양인지 잠을 방해한 외지인이 영 반갑지 않은 눈치다. 찬물을 하나 사들고 왜 이렇게 사람이 없냐고 물으니 모두 시에스타(Siesta, 점심 후의 낮잠) 중이라고, 이 더위에 누가 돌아다니겠냐며 내게 되묻는다. 하핫. 멋쩍게 웃는 나를 두고 잠자리로 돌아가는 주인장의 등이 흥건히 젖어있다. 나는 오히려 지금이 이 황량한 도시를 사진기에 담는데 더 적절하지 않겠냐며, 홀로 중얼거렸고 그렇게 좀 더 거리를 돌아보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마싸와 섬의 풍경>








부서지고 파괴된 건물들이 여전히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다



간만에 만난 아이, 저 소년이라도 없었다면 마치 폐허에 있는 것 같았으리라








<마싸와의 바닷가 풍경>


아름다운 홍해를 끼고 있는 마싸와



홍해는 화려한 산호초 군락이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끌로드가 타고 왔을 법한 선박

해가진 후의 시내는 좀 더 활기가 넘쳤다. 사람들은 이리저리 모여 수다를 떨기도 하고 시샤를 나눠 피기도 한다. 아이들은 술래잡기를 하는 듯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고 상점과 식당들은 손님맞이로 분주해 보인다. 나는 낮에 무리한 탓에 더위를 먹었는지 몸이 피곤하기도 하고 식욕도 별로 나지 않아 간단히 빵과 음료를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미적지근한 에어컨 바람 아래, 계획에도 없던 호사를 누리며 생각에 잠긴다. 폐허에 남겨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떠나지도, 그렇다고 죽지도 못한 사람들의 생의 연명일까, 아니면 꿋꿋이 살아남아 언젠가는 과거의 부흥을 (혹은 적어도 살만한 고장으로의 회복을) 다시 도모하겠다는 의지의 발현일까. 문득, 이 고민이 우리네 삶의 그것과 멀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싸해진다. 시커멓게 탄 가슴을 안고, 과연 우리는 살아지는 것일까, 살아내는 것일까.

형형색색의 산호로 덮인 쪽빛의 홍해를 끼고 아직은 전쟁의 상흔이 아리게 남아있는 도시, 언젠가는 마싸와에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10년? 10년 후면 충분할까. 아, 그러다 갑자기 그녀, 공항에서 만났던 아만다가 떠오른다. 그녀는 첫 방문 때 배를 타고 마싸와로 들어왔다고 했었지. 그녀가 이곳에 다시 오고 싶어 했던 그 마음을 이젠 왠지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공감이 된다, 그녀의 심정이.



멀리 이슬람 교회당 뒤로 노을이 저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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