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배낭여행, 이집트에서 남아공까지 *21 지부티 - 에티오피아 가는 길
  ripi
2006. 10. 31 21:27
여행을 시작하고서 이른 아침과 석양을 자주 만나게 되었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살아오면서 내가 놓친 것이 얼마나 많은지. 해가 뜨고 지는 걸 마지막으로 본 것이 언제였는지.

태양은 그렇게 내게 하루에 두 번 미소 짓는다. 가득히 일어나는 먼지들 사이로, 또 일제 고물 도요타 트럭이 내뱉는 매연 틈으로. 다시 깨닫게 된, 잊고 지내왔던 것들과 함께 미소 짓는다.


이집트에 놓고온 가이드북 덕분에 이곳에서 샀던 가이드북 두 권. 가방의 무게를 줄이기 위하여 버리기 전, 찰칵.


** 지부티를 떠나며

화장실이 달린 싱글룸을 쓸 때는 빨래를 해야 한다. 도미토리는 욕실도 공용이기 때문에 혼자 오래 차지하고 있으면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속옷이나 겉옷은 좀 오래 입어도 괜찮으나, 여행자의 생명인 발을 보호하는 양말만큼은 하루에 한 번씩 갈아 신어야한다는 지론을 열심히 따르던 나, 귀찮은 양말빨래가 한 묶음 밀려있었다. 다하고 나니 자정이 가까워온다. 빨래를 에어컨 앞에 걸어두고 침대에 누우니 마치 벽난로에 양말을 걸어두고 산타를 기다리는 아이같다.

설렘 때문일까. 결국, 이른 새벽을 이기기 위하여 깊이 잠들지 못했다. 2시 반. 3시 반. 그리고 정확히 4시 30분. 나는 일어났다. 3분 뒤 알람이 울렸다. 호텔 모닝콜은 오지 않았다.


지부티 시티, 새벽의 버스 정류장

이미 버스는 얼추 차있었다. 자리마다 가방이, 보따리가 혹은 포대가 놓여있었고 사람들은 주섬주섬 무슨 풀을 질겅거리며 개미들처럼 모여 앉아있었다. 예약한 티켓은 2500Dfr. 배낭을 지붕에 실으며 들으니 짐값은 별도로 25Birr(비르: 에티오피아 화폐단위)란다. $1가 약 9Birr이니 만만치가 않다. 꼬깃꼬깃 지폐를 내어주니 빈 라덴처럼 수염을 기른 아저씨가 20Birr만 받아가며 기름지게 웃는다. 난 수염이 없기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주었다. 슈크란!

두 젊은 청년이 조심스러워하며 뒤쪽 창가 자리가 아직 남았다고 내게 일러준다. 지붕 위의 짐이 걱정되어 버스 안에 앉지는 못하고 자리에 비닐봉지 하나를 올려두었다. 차는 6시가 넘어서야 출발했다. 아니나 다를까, 두 청년이 내 옆자리에 앉는다. 알리와 모하메드.

알리가 조심스러워하며 내게 굳은 얼굴로 초콜릿 바와 캔 음료를 권한다. 대뜸 받아먹으니 경계를 풀고 웃는다. 친구하고 싶어요, 하는 미소 같아서 나도 좋아요, 하고 받아주었다. 그렇게 난 또 여행의 동지들을 만났다.


수다쟁이 알리(왼쪽)와 과묵한 모하메드

마른 사막을 지나, 정오가 다되어 에티오피아와의 국경에 도착했다. 미리 받아둔 비자 덕분에 큰 문제는 없어 보이지만, 에리트레아를 다녀온 흔적이 아무래도 좀 거슬리는 눈치다. 따로 사무실에 들어가 연락처를 적고 짐 조사를 받았다. 검시관이 킁킁거리며 모기퇴치제 냄새를 맡다가 진저리를 친다. 큭,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쾅. 입국도장을 받고 나오니 국경 한구석에는 불법이민자들이 감옥에 갇혀있다. 지나가는 몇몇 사람들이 동전을 넣어준다. 알리가 말하길, 누구나 음식을 사먹을 권리는 있단다. 감방에서는 음식을 공짜로 주는 줄 알았는데, 이곳에서는 아닌가보다. 인권에 대한 해석도 그 나라의 관습과 문화에 준하여 다른 듯.  


아프리카에서 버스 고장은 흔한 일상이다.

국경에서 출발한지 30분도 안되어 차가 멈췄다. 드디어 첫 경험. 모든 처음은 신기하고 재밌을 따름이다. 시동이 안 걸리는가보다고 사람들이 내려서 차를 언덕위로 밀었다. 그러나 헛수고. 내리막길에서도 시동이 걸릴 눈치가 아니다.


자, 신나게 밀어보세!

난 신이 나서 함께 밀기도 하다가 사진도 찍고 그러는데 모하메드가 슬쩍 와서 말하길, 기름이 떨어졌단다. 허참. 고장도 아니고 출발한지 30분 만에 기름이 없다니. 알고 보니 아프리카의 많은 차들은 기름 계기판이 고장 나서 기름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모른 채로 운행을 자주 한다고 한다. 그래도 그렇지. 흠. 이해가 쉽게 되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지나가는 차를 세워 기름을 받는 일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결국 다행히도 40여분 뒤 버스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침 지나가던 트럭에서 기름을 조금 얻을 수 있었다. 휴우.


기름을 주고 유유히 가던 길을 가는 트럭


자! 차에 오르세요. 다시 출발 합니다!


...ri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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