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프리카, 그 푸른대륙에서의 100일 **2 짐을 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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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짐 꾸리기

늘 생각나는 대로 적고 또 많이 물어보아도 꾸리고 나면 불안한 것이 짐이라, 큰 방을 다 어질러놓고도 난 어딘가 허전했다. 절대 무거워서는 안 된다는, 경험으로 얻은 지식마저도 짐처럼 불편하고. 그 곳에서 무엇을 구할 수 있고, 무엇을 구할 수 없는지를 모른다고 마치 무인도에 가듯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갈수는 없었다.

여유를 가지고 하나, 둘 적어가며(또 지워가며) 챙겼더니 터질듯 뚱뚱한 배낭이 20kg은 족히 넘어보였다. 내 몸무게의 1/3을 더 가지고 다닌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했다. 아니다, 그래 이건 아니다. 버리자. 버리고 가자. 비우고 가자.



옷가지와 속옷, 양말은 줄이고 물안경도 과감히 던져버렸다. 다만 모기와의 전쟁을 위해 마련한 도구들만큼은 끝까지 우겨넣었다. 온화한 기후 때문에 아프리카에서 특히 모기들은 많은 전염병들의 주요 원인이 되는데, 말라리아, 뎅기열, 황열병 등 이름만 들어도 오싹한 것들이다. 퍼머스린(Permethrin) 처리가 된 모기장, 모기퇴치제는 넉넉하게 두 병, 살충제와 배터리로 돌아가는 모기향. 불시에 생길지 모르는 간이 잠자리를 위해 목베게와 담요도 하나정도는 있어야겠다.



비상약들은, 한 번씩 다 먹게 되지 않더라도, 꼭 가져가야 한다. 특히, 아프리카는 HIV에 감염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비상시 위험에 노출되지 않기 위해 일회용 주사기와 바늘도 챙겨야한다. 물론, 사용할 일이 생겨서는 안 되겠지만 주사기 재사용 율이 높다니,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그 외에 물티슈와 튜브형 합성세제, 계산기, 배터리, 펜과 노트, MP3, 헤드랜턴 그리고 전자사전도 버리지 못하고 다시 넣었다.



DSLR 카메라는 짐스러웠고 과연 내가 그 곳에서 과감히 이 사진기를 꺼내 사람들 앞에서 찍을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침낭은 작고 얇은 것으로 준비했고 친구에게 얻은 힙쌕에는 여권과 비행기티켓 같은 중요한 물품을 넣었다. 우연히 마주칠 수 있는 도선생들에 대비해 배낭은 숫자로 여는 자물쇠로 잠갔다.

정작 다시 보니, 무거워 보이지만 빼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여행 중간에 하나, 둘 짐이 줄거나 샤워를 할 때마다 가벼워지는 샴푸와 비누의 무게를 짐작하며 혼자 남모를 희열에 빠지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3달을 넘게 사용해야하니 마구 쓸 수도 없다.
늘 떠날 때마다 반복되는 일이지만, 무엇을 가지고 가고 무엇을 가지고 가지 않을지 결정하는 일이란 쉽지 않다. 사실, 어디든 원하는 모든 것을 가져갈 수는 없다. 아마 우리네 生도 비슷하지 않은가 생각을 한다. 하고 싶은 모든 것을, 또 갖고 싶은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다. 우리는 늘 기회비용을 생각해야 하고 또 선택해야 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순간들을 지나치며 우리는 좀 더 현명해지고 또 옳은 길을 찾는 법을 배우는 것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실패는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저 무거움에, 또 찌는 듯한 날씨에 고생을 하면서도 버리지 못할 물건들이 저 안에 있다고 생각하면 그 대가가 결코 작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늘도 신문에서 보는 아프리카는 좋지 않은 소식들만을 안고 있다. 수단 다푸르(Darfur) 분쟁, 소말리아 내전, 우간다의 소년병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이렇게 자꾸 끌어당기는, 그 것은 무엇일까? 고민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도대체 저 검은 대륙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두려움이 없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어깨가 더 무겁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여전히 짐을 꾸리는 일이란, 내게, 참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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