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프리카, 그 푸른대륙에서의 100일 **3 드디어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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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정을 세우며

아무리 달력을 보고 지도를 봐도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았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100일 남짓이었고 다음 학기 복학을 미룰 수도 없었다. 가고 싶은 나라들은 이렇게 많은데, 하고 싶은 것들도 이렇게 많은데, 하며 기를 써도 일정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여행 중에 불가피하게 발생할 만일의 일들에 대비하여 일정을 빡빡하게 세울 수도 없고.
게다가 수단에서 나의 여행을 도와주기로 했던 무삽이 국내 여건이 다르푸르 분쟁(Darfur Conflict)* 등으로 좋지 않다며 다음에 오는 것을 권유함에 따라 가장 가고 싶었던 나라 중 하나였던 수단을 계획에서 빼야했고 대신 에리트레아와 지부티를 넣었지만 나의 계획은 이빨이 빠진 듯 아쉽게 되어버렸다.

결국 최종 계획은, 이집트(Egypt) - 에리트레아(Eritrea) - 지부티(Djibouti) - 에티오피아(Ethiopia) - 케냐(Kenya) - 우간다(Uganda) - 르완다(Rwanda) - 탄자니아(Tanzania) - 말라위(Malawi) - 잠비아(Zambia) - 짐바브웨(Zimbabwe) - 남아프리카 공화국(South Africa), 이렇게 짜여졌다. 모잠비크(Mozambique), 나미비아(Namibia) 그리고 마다가스카르(Madagascar) 등은 결국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고 콩고(Congo)는 이리저리 보아도 아직 엄두가 나지 않았다.



케냐에서 지역 NGO인 CIVS(Centre for International Voluntary Service)와 3주간 자원봉사를 하는 일정도 포함되어 있으니, 과연 내가 이 100일이라는 시간동안 아프리카를 정말 제대로 느끼고 올 수 있을까, 설마 슬쩍 발만 담그고 돌아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들이 들기도 했지만 결국 난 2006년 가을 낙엽이 떨어지던 10월의 어느 날 밤에 이집트 룩소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 다르푸르 분쟁은 2003년 2월 수단의 서쪽지방인 다르푸르에서 발생하여 지금까지 종식되지 않고 있는 내전으로서 아프리카 흑인계 반군과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잔자위드(Janjaweed:말등에 탄 악마)라 불리는 북부 아랍계 이슬람 민병대간의 무력 분쟁을 일컫는다. 인종, 종교 그리고 경제문제가 얽혀서 발생했으며 현재까지 50만 명 이상이 희생되고 25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UN발표)


  2006. 10. 16 01:37
얼굴을 스윽, 하고 쓸어내리니 푸석푸석한 모래먼지가 함께 묻어나온다. 적막하고 고요하던 룩소르(Luxor) 국제공항과는 달리, 시내는 라마단을 맞아 자정이 넘은 지금까지 흥청이고 있었다. 택시기사는 이제 막 도착한 내게 기어코 바가지를 씌웠고 어떻게든 제값을 치르고 싶었지만 늦은 시간의 여행객은 약자일 수밖에 없었다.
녹슨 샤워기와 미지근하게 붉은 물, 아니 붉은 것 같던 물. 샤워실의 불이 그리 밝지 않아 대충 모래만 헹구고 나오니 밖으로는 계속 살가운 아랍의 리듬과 선율이 들려온다. 비교적 깨끗하게 정돈된 침대위에 누워 일기를 쓰고 있자니 내가 어디 있는지, 무엇을 막 시작 하려고 하는 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내일은 5시에 일어나 카이로에서 올 일행을 맞이하러 기차역으로 가야한다. 비행기에서도 설렘으로 잠들지 못했는데, 3시간이나 잘 수 있을지 모르겠다. 모기도 귓전에서 윙윙거리며 박자를 맞춘다. 팔다리가 서너 군데 간지러운 것이 이미 좀 물린 것 같다. 나쁘지 않다. 적어도 아직은, 위험하지 않다.


*** 새벽, 오랜만!

정거장의 이곳저곳에서 눈을 부비며 일어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가느다란 빛을 실처럼 늘이는 저 태양이 아니라면, 새벽임을 알아채기 쉽지 않은 낯선 습도와 날씨. 지난 밤, 라마단을 맞아 사람들과 함께 흥청이던 모래먼지는 차분히 가라앉고 세상은 조금씩 밝아져가고 있었다. 마르고 포근한 느낌이다.
역은 아직도 공사 중인 듯 곳곳에 시멘트 포대나 철근 등이 놓여있었고 가끔 천장에서 흙가루들이 떨어지기도 했다. 선로 주변은 열차의 배설물(실은 사람의)들로 파리와 함께 들썩이고 있었는데, 물론 이 새벽부터 부지런한 것은 비단 저들뿐만이 아니었다. 1997년의 사건* 이후로 한층 강화되었다는 보안을 증명하듯 곳곳에 배치된 무장군인들이나 모래를 쓸어내며 노숙자들을 깨우는 역 관리인들, 아스완으로 가기위해 혹은 카이로에서 오는 손님을 맞기 위해 나온 사람들로 역은 점점 붐비고 있었다.

뿌우우.. 배낭에 기대어, 가만히 앉아있으니 기적소리와 함께 도착한 열차너머로 아침이 온다. 아침이 다가온다. 아프리카에서의 첫 아침이 밝아온다.  


*100일간을 함께한 일기장과 가이드북(Lonely Planet)

카이로에서 출발하는 야간열차를 타고 도착하는 일행은 런던에서 알고지내던 친구들로 중국인 토니와 태국인 깐니다. 내가 아프리카를 간다고 하니 이집트만큼은 꼭 가보고 싶다고 하여 동행하게 되었는데 덕분에 나도 그냥 지나칠 뻔했던 이집트의 유적들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반가운 표정과 지친 표정이 교차하는 둘의 표정은 카이로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짐작하게 했지만, 인사를 채 마치기도 전에 나는 그들을 미리 예약한 봉고차로 밀어 넣었고 어느새 우리는 바로 이집트, 그 역사의 숨결 속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 1997년 11월 룩소르의 핫셉수트 신전(Hatshepsut Temple)에서 일어난 강경 이슬람세력의 관광객 58명 학살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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